돈 경제

주식왕 워렌버핏의 인생 - 당신이 몰랐던 세계에서 가장 현명한 주식투자자

우연25 2023. 2. 1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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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왕 워런버핏의 인생

투자의 귀재, 투자의 전설,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자로 평가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미국의 투자회사(버크셔 해서웨이)의 최대주주이자 회장 겸 CEO, 워런 버핏입니다.

2021년 2월,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보유자산만 932억 달러, 약 103조 3000억 원.

주식 투자만으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가 된 워런 버핏은 1930년에 태어나 올해 한국나이로 94세가 됐음에도

아직도 현역으로 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은 재산의 90% 이상을 60세가 넘어서 일군 것이라는 겁니다.  과연, 이렇게 천문학적인 부를 이룬 비결은 무엇일까요? 투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자가로 불리는

워런버핏(Warren Buffett)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어린 시절

1930년 8월 30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아버지 하워드 호만 버핏과 어머니 레일라 버핏 사이에서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워런버핏. 워런버핏의 집안은 할아버지 어니스트 버핏 시절까지만 해도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며 겨우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버핏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이 주식 중개인으로 성공을 거두고, 또 공화당 연방 하원으로도 당선되는 등 부와 권력을 가진 지역 유지로 자수성가를 하게 됩니다.

버핏은 어린 시절,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고 사교성이 부족한 아이였지만 대신 숫자와 돈에 관한 관심과 재능만큼은 탁월했습니다.  특히, 숫자를 기억하고 계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주식 중개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8살 때부터 주식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10살이 되자 이미 오마하 도서관에 있는

투자 관련 책을 모두 읽을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안경을 써야 했던 버핏은 지금도 하루 일과 중 80%는 책을 읽는 것으로 유명한데 주주총회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세요!!

10살 때 나는 오마하공공도서관에서 투자 관련 서적을 모두 읽었습니다. 어떤 책은 두 번 읽었습니다. 나는 19살 때 읽은 책을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19살 때 책에서 얻은 사고의 틀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버핏은 11살 때 처음으로 석유회사인 시티서비스 주식을 사게 됩니다.

한 주당 38달러를 주고, 3주를 산 것인데 버핏이 사고 난 후 주식은 27달러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초조해진 어린 버핏은 심하게 마음고생을 한다. 40달러로 오르자 얼른 매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이후 그 주식이 200달러까지 치솟는 걸보고

버핏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장기투자의 중요성과 투자에서 인내가 얼마가 중요한지를 말입니다.

또한 버핏은 장사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남들이 유치원 다니는 6살 때부터 껌이나 콜라, 골프공, 팝콘, 등을 팔아 돈을 모았고, 그래서 15살 되었을 때는 2000달러를 모아 농지 49000평을 자기 돈으로 살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고등학생이던 17살 때는 단짝친구 돈대리와 함께 핀볼게임기 대여사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중고 핀볼게임기를 구입해 이발소에 설치를 한 다음 수익이 나면 이발소 주인에게 수익의 일부를 나눠주는 식이었는데

입소문이 나며 게임기를 설치해 달라는 이발소들이 늘어나게 됐고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버핏의 재산은 6000달러

그러니까 현재 가치로 74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모으게 됐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때 같이 사업을 했던 친구 돈 댄 리는 버핏을 이렇게 기억 했습니다. " 워렌은 너트에 볼트를 끼워 맞출 줄도 모를 정도로 기계에는 문외한이었다. 그런데 그는 두 자리 숫자 20개를 암산으로 더할 수 있는 재주를 갖고 있었다.

워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읽은 경제 서적만 100권이 넘을 것이다."

일찌감치 버핏의 성공을 확신한 돈 댄 리는 이후 버핏이 투자조합을 만들자 2만 5천 달러를 투자했고, 덕분에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2. 벤자민 그레이엄과의 만남

이렇게 일찌감치 투자와 사업에 눈을 뜬 버핏은 초등학교 때부터 월반을 해서 또래들보다 일찍 대입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실 대학을 가고 싶어 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학에선 배울 게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간절한 설득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된 버핏.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부와 네브래스카 대학을

조기 졸업한 뒤 버핏은 하버드 경영 대학원에 지원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버핏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보기 좋게 하버드에서 낙방하고 말았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안고 다른 대학원을 알아보던 버핏의 눈에 운명처럼 들어온 학교가 있었으니

바로 컬럼비아 대학원이었습니다. 그곳에 바로 버핏이 어린 시절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증권분석><현명한 투자자>의

저자이자 가치투자의 대가, 벤자민 그레이엄이 교수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버핏의 바람대로 컬럼비아 대학원에 당당히 합격, 그토록 만나고 싶던 벤자민 그레이엄을 스승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레이엄이 쓴 책들을 거의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고, 그가 수업 중에 질문을 던지면, 항상 가장 먼저 손을 들어 대답할 

정도로 열심이었던 버핏. 덕분에 버핏은 학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한 그레이엄의 모든 수업에서 전부 A+를 받게 됩니다.

이런 성적은 그레이엄이 가르친 학생들 가운데 버핏이 유일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스승 그레이엄을 통해 멀리 그리고 길게 보는 투자와 좋은 기업을 오랫동안 소유하는 장기투자, 가치투자를 배우게 된 버핏. "15%는 피셔에게, 85%는 그레이엄에게 영향을 받았다"라고 할 정도로 오늘날의 버핏을 만드는데 스승 그레이엄은 엄청나게 큰 역할을 했습니다.

 

3. 다시 고향으로~ 결혼

1951년 대학원을 졸업한 버핏은 스승 그레이엄에게 그의 회사에서 무보수로라도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당시 그레이엄의 회사는 유대인만 채용한다는 원칙 때문에 버핏의 제안을 거절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고향 오마하로 돌아오게 된 버핏은 아버지의 주식중개 회사에서 주식 중개인으로 일을 하며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기, 버핏의 인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이를 만나게 되니 바로 아내 수잔톰슨.

수잔에게 천눈에 반한 버핏의 적극적인 대시로 두 사람은 1952년 4월 결혼을 하게 됩니다.

1남 2녀, 삼 남매를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두 사람. 결혼생활 내내 버핏은 수잔에게 정신적,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투자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 1977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버핏도 투자계의 거목으로 자리를 잡자 수잔은 음악을 하고 싶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기게 되고, 두 사람은 사실상 별거 상태에

들어가게 됩니다. 날마다 전화를 걸어 돌아와 달라고 울먹일 정도로 아내와 떨어져 힘든 시간을 보냈던 버핏은 아내를

떠나보낸 것을 '내 평생 가장 큰 실수'라고 회고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2004년 아내 수잔은 72세 나이로 구강암을 진단받고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2006년 버핏은 수잔의 부탁으로 자신을 돌봐주던 요리사 애스트리드 맹크스와 재혼해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습니다.

 

4. 첫 투자회사

1954년 7월 첫 아내 수잔과 고향 오마하에서 신혼을 즐기고 있던 버핏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옵니다.

바로 스승 그레이엄으로부터 합계 일하자는 연락이 온 것입니다. 버핏은 연봉이나 근무 조건도 물어보지 

않고 바로 승낙했습니다. 1954년 12월 아들이 태어나자 아들의 이름을 하워드그레이엄 버핏이라고 지을 정도로

버핏은 그레이엄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했습니다.

그렇게 그레이엄과 함께 일을 하며 식견을 더 넓히고, 더불어 버핏의 능력은 점점 더 빛을 발하게 됩니다.

그러던 1956년 그레이엄은 은퇴를 선언하면서 자신의 회사 그레이엄 뉴먼코퍼레이션을 버핏에게 물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버핏은 그레이엄의 좋은 제안을 거절해 버렸습니다.

이유는 자신의 고향 오마하가 너무도 그리워서였습니다. 그렇게 버핏은 다시 고향 오마하로 돌아오게 됩니다.

스승으로부터 독립해 고향으로 돌아온 26살의 버핏은 자신의 이름을 딴 투자회사, 버핏 투자조합을 만들고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의 투자 역사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1956년부터 1969년 투자조합을 해산하기까지

버핏투자조합이 보인 수익률은 연평균 29.5% 누적 수익률로 보면 무려 2794.9%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수치는 13년 만에 원금이 약 29배로 늘어난 셈으로 56년 투자조합을 시작하던 당시 17만 달러 정도였던 버핏의 재산은

13년 만에 156배인 2650만 달러 39세 나이에 현재 가치로 보면 약 20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갖게 됩니다.

 

5. 버크셔 해서웨이

1965년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원래는 방직회사였던 회사의 경영권을 인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이제는 직접 투자가 아닌 법인을 통한 투자 사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버핏의 모든 투자는 버크셔해서웨이를 통해 이뤄질 만큼 버핏의 투자 역사는 곧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 역사였습니다.

버핏은 성공적인 투자를 하며 많은 기업들을 통째로 인수해 나갔는데, 계열사만 400개가 넘고, 산하 직원만 40만 명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제국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동안 버크셔해서웨이가 투자한 기업으로는 코카콜라, 애플, 골드만삭스, 무디스, 월트디즈니 등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들이 모두 버크셔해서웨이의 찜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수익률도 엄청납니다. 1965년부터 미국 S&P주가지수가 약 15000% 상승하는 동안 버크셔의 주가는 

2,400,000% 상승했습니다. 그러니까 65년 당시, 한주에 18달러 정도였던 버크셔의 주가는 현재는 한주에 약 35만 달러,

약 3억 9천만 원이나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그의 투자가 늘 백전백승, 성공한 것만은 아닙니다. 버핏이 인수했던 버크셔해서웨이 방직회사는

2000억 달러의 비용을 지출했을 정도로 실패한 투자였다고 꼽는 종목 중의 하나였으며, 구글(Google)이나 아마존의 가치를

몰라보고 투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마존처럼 뒤늦게라도 그 사업을 이해하고 보유하게 된 주식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포브스 선정 세계 갑부순위에서 1990년 보유재산 42억 달러로 2위, 1993년 152억 달러로 세계부호 1위, 2005년 세계부호 2위, 2008년 620억 달러로 다시 세계최고부자로 등극. 2020년에도 4위를 기록하는 등 

워런버핏은 여전히 현역에서 승승장구하며 노익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6. 가치관

버핏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 원칙 2가지가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첫째 원칙은 절대 돈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둘째 원칙은 이 첫째 원칙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합계 강조하는 것이 바로 스노볼 효과입니다. 

여기서 스노우볼 효과란 눈사람을 만들 때처럼 주먹만 한 눈덩이를 계속 굴리다 보면 어느새 산더미처럼 커지는 현상을

빗댄 것으로 장기 투자와 복리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그가 자주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초기에는 비록 적은 돈일지라도 거기에 이자에 이자가 붙어서 나중에는 눈덩이처럼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로 자기 인생에서 후회하는 게 있다면, 그중 하나가 주식을 11살 때부터 시작한 것이라며 나중에 다시 태어난다면 5살이나 7살 때부터 시작하고 싶다고 한 것도 바로 이 스노우볼 효과를 두고 한 애기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는 버핏이지만 그의 생활은 전혀 딴판입니다.

지금도 1958년, 오마하에서 우리 돈으로 약 3800만 원을 주고 구입한 평범한 2층 주택에서 60년 넘게 살고 있으며, 그의 아들이나 딸들 역시 자신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자기네 집이 그렇게 큰 부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자랐다는 것입니다.

버핏은 지금도 여전히 아침으로 맥도널드에서  2달러나 3달러짜리 모닝 세트를 먹고, 운전기사도 없이 2001년식 중고

링컨타운카를 직접 몰고 다닐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돈은 자식을 망친다. 내 자녀들은 미국의 99% 아이들에 비해 이미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그들은 내가 차지하는 위치를 물려받지 않을 것이며 나는 왕조적 부가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세 자녀에겐 300만 달러만 남기고, 자신의 재산 90% 이상은 사회에 환원할 것이라고 밝혀왔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게이츠 부부와 함께 재산을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가입하는 <기빙플레지>라는 기부 클럽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대규모 투자 손실이 있었음에도

버핏은 3조 8천억 원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며 지금까지 43조 7천억 원을 넘게 기부해 왔습니다.

누군가 버핏에게 성공이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나이를 먹은 뒤에도 사람들이 내 곁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잘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 세상 유명한 사람들, 큰 부자들, 매일 약속과 파티가 있지만 그들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경우가 많다. 평범하더라도 주위로부터 사랑받는 인생이 바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

 

-오마하의 현인, 가장 위대한 투자가 Warren Buffett(워런 버핏) -